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죽음으로써 살고, 버림으로써 얻고, 낮아짐으로써 높아지고, 비움으로써 채워지고, 부정으로써 긍정에 이르는 자기 비움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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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비움의 길” 시리즈
 
1. 추천의 글
하비루의 길을 쓴 저자로부터 추천서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여러 번 거절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귀한 책의 서문을 쓸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를 했고, 저자의 삶 속에서 일어난 영성의 여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증인이요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오염되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이 시대와 교회를 치유하고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고 찾으시던 사람입니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 현장에서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같은 한국교회 그리고 목표와 방향을 잃어버리고 제동장치도 없이 질주하는 기차와 같은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누구보다도 마음 아파하며 심한 몸살을 앓았습니다. 교회는 영적 감각을 잃어버리고 죽어 가는데 아무 대책이 없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통곡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현실을 학문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보기 위해 노력하다가 절망을 경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어서 한없이 탄식하며 기도하다가 하나님 면전에 서는 사건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확장시키며 영성의 눈으로 성서와 그 역사를 재해석하였습니다. 그것이 제1부 「하비루의 길」이고, 제2부 「죄인의 길」입니다. 그리고 제3부는 「자기 비움의 길」로서 하나님께 가는 길을 구체적으로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한국교회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사람입니다.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하비루의 삶을 경험하였고, 남다른 고난을 체험하였습니다. 독학으로 고등학교와 대학 과정을 공부하였습니다. 신학교에 들어와서는 교회사를 전공하였고, 졸업할 때는 전국 신학대학 최우수 논문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목회 현장에서도 학문적인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준비가 있었기에 성서를 정확하게 해석하고, 지나간 역사를 통하여 오늘의 오류를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내일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방대한 작업을 해 낼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하나님을 말하는 사람은 적고, 영성에 관하여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영성을 말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시대에, 저자는 하나님과 영성을 자기 체험과 성서적인 근거를 가지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연구실에서가 아니라 목회현장에서 영적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 지도자들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생깁니다. 성직자의 책임은 그 시대에 대한 역사적인 책임이며,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들의 타락을 용납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영적 순례의 길에서 진정한 안내자가 필요한 이 시대에 저자를 통하여 영성의 길을 안내 받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이 책이 한국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하나님의 도구로 귀하게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2004년 10월      저자의 벗
 
2. 저자의 머리글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기도를 시도해 보지만 기도가 쉽지 않음을 경험하게 된다. 기도에 전념하려고 하면 맨 처음에 부딪히는 어려움은 ‘잡념’이다. 온갖 잡념이 몰려와서 앉아있는 것 자체가 힘들 때가 많다. 여기가 첫 단계다. 잡념과 싸우면서 기도에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 다음으로 넘어가는데, 간혹 환상(환청)과 예언, 황홀경을 비롯한 여러 ‘신비체험’들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초자연적인 그 무엇들이 일어나면 기도가 대단히 깊어졌으며, 또 무슨 큰 능력이 주어져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할 때인 줄 알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단계는 영적인 긴 여정의 시작일 뿐이며 지나가야하는 한 과정에 불과하다. 이 단계가 지나가면 ‘바라봄’이 온다. 바라봄은 두 단계로 진행이 되는데, 바라봄의 첫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여기에 이르면 기도의 집중은 곧 자신의 실상을 대면하는 것인데, 여기서 발견하는 자신의 모습은 온갖 모순과 죄의 속성들이다. 초기에는 행동으로 표현되는 죄성(罪性)들을 보게 되지만 점차 자기 속에 잠재되어 있는 죄상(罪狀)들이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드러남이 끝나면 전혀 다른 세계의 바라봄이 시작된다. 하나님, 절대자, 무한자, 완전자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그분을 바라보게 된다. 이 뵈옴은 어떤 형상이 아닌 시선(視線)으로 다가온다. 절대침묵 속에서 그분과 시선이 마주침을 느끼면서 그냥 바라보게 된다. 여기쯤 오면 잡념이 사라지고 인간의 언어는 기능을 잃게 된다. 눈빛으로 직접 마음의 생각과 상태들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신비체험은 이 바라봄에서 경험된다. 여기를 가리켜 기도의 이상적인 상태라는 ‘관상’(觀想)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도 끝은 아니다. 그 다음은 바라봄이 사라지고 ‘잠김’이 찾아온다. 늘 그분 안에 잠겨진 상태가 된다. 이를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합일)고 하며 여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도 마지막이 아니다. 더 가야 한다. 그 다음은 어디일까? 본래의 ‘제자리’로 돌아온다. 여기가 마지막이다. 여기까지 가면 일련의 영적인 순례가 마감이 된다.
출발했던 제자리로 돌아오면 뭐가 달라진 것일까? 놀랍게도 처음모습 그대로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하나님의 심정’이 주어진다. 그리고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왜 그럴까? 세상이 달라졌나? 아니다. 세상은 그대로 있는데 보는 내가 달라져 있다. 나의 무엇이 달라져 있는가? 보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익숙해져 있던 내 입장에서 떠나 이제는 그분의 입장에서 보게 된다.
이 책은 그분의 심정으로, 그분의 입장에서 몇 분야를 다시 본 것이다.
구약성경과 이스라엘 역사 다시보기
사람의 입장에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창조주, 심판자 등으로 다가오며, 성경은 하나님을 섬기는 법 이고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주로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과 성경, 신앙을 이해했다. 그러나 보는 시각을 바꾸어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인다. 당신의 형상을 따라 그 모양대로 지음 받은 자식(사람)을 위하여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을 위하여 말씀을 주시며, 자식의 불행이 견딜 수 없어 통곡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율법과 십계명, 예언서의 말씀들은 전적으로 사람을 위한 말씀으로 해석되어지고 창조주, 심판자, 무한자, 전능자, 완전자 등의 개념으로 포장된 하나님 그분의 실상은 사랑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구약성경뿐만 아니라 그 배경인 이스라엘의 역사 또한 다르게 보인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계약을 맺으셨던 이스라엘과 그 역사 2천년은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몸부림이요 탄식이고 그 숨결이며,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다.
신약성경과 교회사 다시보기
이러한 입장을 계속 유지하면서 신약성경으로 넘어오면 인간을 향한 하나님 사랑의 완성을 보게 된다. 인간을 위하여 말씀과 법을 주시던 구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실패를 회복하기 위하여, 이제는 친히 인간이 되셔서 사람의 삶을 사시며 사람을 섬기시다가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살과 피를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시고 사람의 죽음을 죽으신다. 신약성경에서는 사람을 위하여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죽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의 무대는 오리엔트 세계에 불과하지만 신약과 교회사로 넘어오면서 그 무대가 유럽과 세계로 확산된다. 이제는 이스라엘 역사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세계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인’이라는 신앙의 고백이 과연 세계사 현장과 만날 수 있을까? 세계사 특히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온 현대사를 하나님께서 주도하셨다고 역사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게 느껴지겠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보여진다. 성경의 하나님 그분은 분명 세계사의 주인이시다.
영성 다시보기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의 영성을 들여다 보면 수도(修道)와 신비체험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일체의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초월하여 특별한 경험과 특별한 삶을 살려는 인간적인 시도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입장을 바꾸어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시도가 어떻게 보일까? 수도와 신비체험으로 도달한 초월적인 상태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정신세계일까? 이런 것을 통해서만 최고의 가치기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생각이며 잘못된 시도다. 진정한 진리는 특별한 방법으로 특별한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진리가 진리이기 위해서는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진리에 관한 상식이다. 수도와 신비체험의 영성, 다시 해석되어야 한다.
이 책은 하나님의 심정(영성)으로 성경의 말씀(text)을 그 말씀의 적용무대인 역사(context) 속에서 해석을 시도한다. 즉 영성과 성경과 역사의 만남인 셈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인 2천 년대, 새 시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듯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새로운 관점에서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을 재해석해야 한다. 분명 하나님의 심정이 재해석을 위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주리라고 생각한다.
결코 쉽지 않은, 그리고 방대한 이 과제에 ‘물음’이라는 방식을 사용했다. 지금은 별로 사용되지 않지만 예전에는 궁극적인 문제에 접근해갈 때에 흔히 쓰이던 방법이었다. 일방적인 설명이나 전달보다는 물음-답변의 방식이 방대하고 난해한 문제를 접근해가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 한다.
주님, 이 일은 전적으로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가능했습니다.
홀로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아멘.                                                                 저자    길동무
 
3. 책의 목차
1) 제1부 "하비루의 길" 목차
전역사(前歷史): 창조 ~ B.C. 2,000년 < 하나님의 천지창조 >
<물음 1>성경, 어떻게 읽어야 하나?
<물음 2>창조, 무엇을 위함인가?
<물음 3>선악과, 왜 만드셨나?
<물음 4>선악과, 지금은 무엇인가?
<물음 5>하나님의 심판, 무엇을 말하는가?
<물음 6>바벨탑, 무엇을 말하는가?
<물음 7>구원, 어느 종교에 있는가?
<물음 8>성경은 무엇을 말하는 책인가?
<물음 9>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 전환기 : B.C. 2,000~1,500년 < 하나님의 구원계획 >
<물음 10>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은 무엇인가?
<물음 11>세상을 구원하기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
<물음 12>이 구원계획의 특징은 무엇인가?
<물음 13>이 구원계획이 실현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물음 14>어떤 기준으로 이런 조건들을 선택할 것인가?
<물음 15>준비된 ‘때’는 언제였나?
<물음 16>왜 그 때(메소포타미아 시대)였나?
<물음 17>준비된 사람은 누구였나?
<물음 18>왜 아브라함인가?
<물음 19>준비된 땅은 어디였나?
<물음 20>왜 가나안이 선택되었는가?
<물음 21>왜 가나안에서 시작하시는가?
<물음 22>왜 지중해인가?
<물음 23>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 아브라함
<물음 24>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 이스라엘 민족
<물음 25>왜 애굽의 400년 하비루인가?
<물음 26>구약의 하나님, 누구의 하나님이신가?
<물음 27>출애굽, 무엇을 말하는가?
<물음 28>왜 시내산으로 갔나?
<물음 29>시내산 계약,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가?
<물음 30>시내산 계약, 무엇을 말하는가?
<물음 31>시내산 계약법의 특징은?
두 번째 전환기 : B.C. 1,500~1,000년 < 하나님나라의 모형 >
<물음 32>가나안으로 가라.
<물음 33>왜 거룩한 땅이라 하는가?
<물음 34>왜 여리고인가?
<물음 35>어떻게 여리고를?
<물음 36>아이성, 왜 실패했나?
<물음 37>가나안을 ‘정복’한 것인가?
<물음 38>왜 정복설을 말하는 구절들이 들어있을까?
<물음 39>구약은 율법이요 신약은 복음인가?
<물음 40>거룩하게 살아라.7
<물음 41>사사시대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
<물음 42>말씀대로만 살았으면 과연 전쟁이 없었을까?
<물음 43>신명기, 무엇을 말하는가?
<물음 44>하나님의 전쟁(聖戰), 무엇을 말하는가?
<물음 45>사사시대, 어디로 가야했나?
<물음 46>사사시대의 비극은 무엇인가?
<물음 47>사사기의 실패, 누구의 책임인가(1)?
세 번째 전환기 : B.C. 1,000~500년 < 실패와 파국 >
<물음 48>사무엘, 왜 중요한가?
<물음 49>사무엘이 탄생시킨 왕조는?
<물음 50>왕정, 어디로 흘러갔나?1
<물음 51>왕정시대,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나?
<물음 52>예언자, 그들은 누구인가?
<물음 53>예언자들의 선포, 어떻게 되었나?
<물음 54>계약 불이행,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
<물음 55>마지막 기회, 왜 상실했나?
<물음 56>이스라엘의 멸망, 누구의 책임인가?(2)
네 번째 전환기 : B.C. 500~1년 < 재건, 또 파국 >
<물음 57>바벨론 포로시대, 어떻게 지냈나?
<물음 58>이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람들은 누구인가?
<물음 59>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바꾸어 놓았나?
<물음 60>눈물의 참회,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
<물음 61>이스라엘 재건, 어떻게 진행되었나?
<물음 62>유대교, 어떻게 시작되었나?
<물음 63>에스라의 활동, 무엇을 의미하나?
<물음 64>랍비들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
<물음 65>양극단의 문제, 어떻게 해결했나?148
<물음 66>유대인의 메시야 상(像), 어떤 모습인가?
<물음 67>예언에서 묵시로, 왜, 어떻게 진행되었나?
<물음 68>유대교, 어떻게 진행되었나?1
<물음 69>유대교, 어떤 열매를 맺었나?
<물음 70>요나서와 욥기, 무엇을 말하는가?
<물음 71>누구의 책임인가?(3)
<물음 72>실패의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나?
<물음 73>유대인, 어떻게 살아남았나?
<물음 74>이스라엘, 어떻게 해야 했나?
<물음 75>이스라엘 공동체, 무엇을 남겨주었나?
<물음 76>Judaism인가?, Hebraism인가?
 
2) 제2부 "죄인의 길" 목차
다섯 번째 전환기:A.D.1년~500년 <때가 찼고>
<물음 1> ‘때가 찼고’, 무엇을 말하는가?
<물음 2> 왜 ‘그 때’였을까?
<물음 3> 종말, 언제 오나?
<물음 4> 하나님, 왜 사람이 되시었나?
<물음 5> 왜 마구간, 말구유인가?
<물음 6> 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나?
<물음 7> 마귀의 시험, 무엇을 말하는가?
<물음 8> 왜 갈릴리로 가셨는가?
<물음 9>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
<물음 10> 예수님의 사역, 무엇을 말하는가?(1)
<물음 11> 예수님의 사역, 무엇을 말하는가?(2)
<물음 12> 예수님의 사역, 무엇을 말하는가?(3)
<물음 13> 행위인가? 믿음인가?
<물음 14> 왜 바울인가?
<물음 15> 부활하신 주님, 40일 동안 무엇을 하셨나?
<물음 16> 왜 예루살렘인가?
<물음 17>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물음 18> 파송식, 어떻게 진행되었나?
<물음 19> 지중해 선교의 주역은 누구였나?
<물음 20> 일어나 잡아먹어라.
<물음 21> 어떻게 로마제국을?
<물음 22> 왜 박해를 받았나?
<물음 23> 박해, 무엇을 말하나?
<물음 24> 준비된 사람, 누구였나?
<물음 25> 밀란칙령, 무엇을 말하나?
<물음 26> 로마제국의 국교, 무엇을 의미하나?
<물음 27> 새 가나안, 어떤 땅인가?
<물음 28> 교회가 가야할 큰 방향은?
<물음 29> 새 가나안 입주 후 당면한 과제는?
<물음 30> 세속화, 어떻게 대처했나?101
<물음 31> 기독교 영역, 어떻게 넓혀졌나?
<물음 32> 와서 믿게 하는 선교, 어떻게 진행되었나?
<물음 33> 로마제국, 기독교 때문에 망했는가?
<물음 34> 어거스틴, 그는 누구인가?
<물음 35> 성직(聖職), 어떤 자리인가?
<물음 36> 어떤 대답을 해야 했나?
<물음 37> 어떻게 대답을 찾아야 하나?
여섯 번째 전환기:A.D.500년~1000년 <어두운 시기 1>
<물음 38> 중세 전기, 어디로 갔나?
<물음 39> 수도원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물음 40> 수도원 운동, 어디로 가야했나?
일곱 번째 전환기:A.D.1000년~1500년 <어두운 시기 2>
<물음 41> 중세 후기, 어떤 모습이었나?
<물음 42> 학문의 여왕, 무엇을 의미하나?
<물음 43> 중세 예술, 무엇을 말하는가?
<물음 44> 어두움을 밝히려는 운동, 무엇이었나?
<물음 45> 중세 개혁운동, 왜 실패했나?
<물음 46> 선구자, 누구였나?
<물음 47> 중세기, 무엇이 문제였나?
<물음 48> 중세교회, 어디로 가야했나?
여덟 번째 전환기:A.D.1500년~2000년 <근대와 현대>
<물음 49> 교회사의 대상은 무엇일까?
<물음 50> 중세교회, 어떤 재앙을 몰고 왔나?
<물음 51> 이 사건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물음 52> 인간주의, 어디에 이르렀나?
<물음 53> 중세교회에 대한 반발, 무엇을 말하나?
<물음 54> 누구의 책임인가?1
<물음 55>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나?
<물음 56> 현대 500년은 무슨 시대였나?
<물음 57> 교회의 포로기, 어떻게 지냈나?
<물음 58> 개신교의 한계는 무엇인가?
<물음 59> 교파의 난립,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아홉 번째 전환기:A.D.2000년~ 현재 <현대 이후>
<물음 60>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물음 61>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이신가?
<물음 62> 2천 년대, 무엇을 말하는가?
<물음 63> 아시아의 어느 나라인가?
<물음 64> 한국교회,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3) 제3부 "비움의 길" 목차
<물음1>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물음2> 우리 시대의 지상 과제는 무엇인가?
<물음3> 지금의 전환기 신학,무엇이어야 하나?
<물음4> 영성신학,어떻게 만들어내야 하나?
<물음5> 영성운동,어떻게 흘러왔나?
<물음6> 두 영성운동의 실패 원인,어디에 있나?
<물음7> 은둔수도,무엇이 문제인가?
<물음8> 은둔수도의 열매,무엇인가?
<물음9> 중세교회의 선교와 구제,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물음10> 중세교회의 선교와 구제,어떠해야 했나?
<물음11> 수도원 운동의 영성신학, 무엇인가?
<물음12> 수도원 영성신학이 지닌 한계는 무엇인가?
<물음13> 수도원 영성, 어디에 뿌리를 내려야 했나?
<물음14> 영성, 어디로 어떻게 가야 했나?
<물음15> 오늘의 “새 술”, 무엇인가?
<물음16> 오늘의 “새 부대”는 무엇인가?물음17 수도사 영성과 케노시스 영성, 무엇이 다른가?
<물음18> 이 시대의 가장 큰 일, 큰 말, 무엇인가?
<물음19> 케노시스 영성회복, 무엇을 해야하나?
<물음20> 케노시스 영성의 걸림돌은 무엇인가?물음21 영성신학, 무엇을 풀어야 하나?
<물음22> 수도원 영성의 결산, 무엇인가?
<물음23> 케노시스 영성,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물음24> 케노시스 영성의 주요원리들, 무엇인가?
<물음25> 정화와 조명, 어떻게 진행되나?
<물음26> 능동적인 정화와 수동적인 정화, 무엇이 다른가?
<물음27> 쉼과 훈련, 어떤 것인가?
<물음28> 기도,무엇인가?
<물음29> 기도,어떻게 해야 깊어지나?
<물음30> 영적 성장의 필수조건은 무엇인가?
<물음31> 사탄의 세력,무엇인가?
<물음32> 비움의 길,어떻게 진행되는가?
<물음33> 비움,이후에는 어디로 가는가?
<물음34> 돌아옴(귀환)이후에는 무엇을 하나?
<물음35> 영성의 길 전 과정은?
<물음36> 영성에 대한 총결산은?
<물음37> 왜 케노시스 영성인가?
부록1. 하나님체험일지
부록2. 예언자,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